온도 차가 난다

Mar 20 2017
정윤희

송광찬 개인전 <마주보다> 2016.7.20~7.30 스페이스 누에

작가는 대상을 오래도록 관찰하며 그것을 적외선 카메라로 담는다. 이번 전시에서 궁을 찍은 작품이 여럿 소개되었는데, 궁을 찍은 지는 8년이 되었다. 강변, 빌딩 숲 등 도시의 다른 장소들도 꾸준히 찾아가서 찍어왔다. 자연과 빛은 한시도 같은 모습으로 머물지 않고 대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도 마찬가지다.

적외선은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태양광선이고, 스펙트럼에서 가장 긴 파장의 가시광선인 적색 빛의 밖에 있는 광선이다. 파장이 길고 대상의 움직임에 기민하게 반응을 하며 얇은 막이나 대상을 뚫고 들어가기도 한다. 적외선 카메라는 사람의 피부 속 혈관을 포착하기도 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체액의 흔적들을 찾아내곤 해서 의학이나 수사의 목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물과 대기의 흐름, 얇은 이파리들이 적외선 카메라로는 조금 다르게 찍히는 것이 이 때문이다.

평소 같으면 처마 끝이 양쪽으로 힘차게 뻗어 나있는 육중한 궁궐이 힘과 권위의 상징으로 보일법도 한데 작품에서는 다정다감하게 느껴진다. 적외선 사진 안에서는 궁의 강인한 실루엣과 시커먼 기와는 묻히고 기와들이 이루는 아름다운 결들, 죽담과 돌담의 세세한 결들이 살아난다. 사진작가의 적외선 카메라에 처음 담기는 사진은 온통 붉은 색을 띠고 있어 리터치를 요하게 되는데 이 과정을 거친 사진은 일상의 풍경을 전혀 다르게 해석하기도 해서 특히 이파리들은 초록이 아닌 단풍이나 꽃처럼 보이기도 한다. 작가는 노출을 길게 해서 나무들이 흔들리는 모습도 포착했다. 투명하고 작은 무수한 이파리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겹치고 또 겹쳐져 자연히 여러 번 붓으로 덧칠한 회화의 이미지를 떠오르게 하며, 이로써 나무들은 건축물보다 더 농후한 인상을 띠게 된다. 강물, 구름과 같이 정지되어 있지 않고 조금씩 흐르는 것들은 실제 육안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두텁게 나타나며 기후 조건에 따라 효과는 매우 다양하게 펼쳐진다.

온도차가 난다. 열렬히 사랑하는 것과 다정함을 느끼는 것 사이에는, 한낮의 쨍한 태양빛으로 바라보는 것과 구름 낀 날 그늘지게 바라보는 것 사이에는, 순간에 번뜩이는 시선과 관조하는 시선 사이에는. 적외선이 대상의 온도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대상에 슬며시 침투해 들어간다면, 규격과 틀에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흐르는 것들은 오히려 적외선을 강력하게 빨아들인다. 작가는 삼각대 위에 카메라를 올려놓고 노출량을 조절하며 대기와 이파리들이 화면에 남기는 터치를 담고, 또 다른 빛과 조건 안에서 새로운 그림이 탄생하는 순간을 오랜 세월 무수히 담지만 전시회장의 벽에 걸리는 것은 평평하고 매끈한 몇 장의 사진이다. 본래 틀에 갇히는 것을 싫어하는 자연은 그림을 뚫고 나와 생동할 것만 같다.

전시장의 한쪽 방에서는 설치작업을 하는 작가의 여자 친구 다니엘 경과의 협업 작업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국의 풍경 위로 형광색 클레이 외계 생명체가 떠다니는 작품이었다. 작가는 그와의 협업을 앞으로도 이어갈 거라고 말했고, 나는 작업의 과정에서 아직은 여자 친구를 많이 배려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똑같은 풍경을 수없이 바라보며 아주 조금씩 자기 색깔을 찾아갔던 그였으니 생경한 조형물과 앞으로는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나갈지 꼭 지켜보고 싶어진다. 그의 에튀드는 곧 작업이 된다. 본래 작가의 작업이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었던 만큼 새로운 기법이나 기술로써 화면에 터치를 가하는 것이 작가가 밟기에 타당한 다음 단계라고 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