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rden Eel Lives The Black City

개인의 이익이 아닌 사람들과의 연결에 대한 갈망은 여전히 소멸하지 않았다. 오늘날이 사람들은 과거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안정과 더불어 존중과 애정과 활기를 필요로 한다. 공동체의 표시는 구성원들이 서로 인사를 건네는 것이다. 이슬람에서는 ‘살람 알라이쿰’이라고 인사하고, 히브리어의 인사말은 ‘샬롬’이다. 영어 peace은 평등 해서 어느 누구도 상대를 지배하거나 공격하려고 시도하지 않을 때 평화가 깃든다는 뜻이다. 흰두교의 인사말 나마스테는 ‘당신 앞에 절합니다.’라는 말로, 내가 당신보다 나을 것이 없고, 우리는 모두 삶의 정신과 신성한 불꽃을 품은 평등한 인간이라는 뜻이다. 수많은 문명이 먼지만 남기고 사라졌다. 여러 종족과 언어를 지배하던 막강한 제국도 지금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서로에게 인사하고 절하면서, 그 친밀함의 연결을 놓치 않았다. 이러한 사람들과의 연결은 온전히 살아있기를 바라는 갈망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리고 친밀하고 사적인 관계만이, 겉으로 들어난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음을 알아가게 되는 것이다.

Sun Fish Meets the Black Sea

The Story of Sun Fish Meets the Black Sea / Sunfish가 검은 바다를 만나는 이야기 입니다. 태양을 닮은 Sun fish는 태양에 살고 있는 물고기입니다. Sun fish는 바다를 보고 싶었습니다. 달에 사는 달토끼가 Sun fish에게 이런 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바다는 끝없이 펼쳐진 검은 우주공간과 같아. 바다엔 시원한 바람이 불고, 그 안에 울긋불긋 아름다운 생명체들이 살고 있어.” 이글이글 타오르는 태양은 눈부시게 빛납니다. 그런 태양과 함께 Sun fish도 아름답게 빛납니다. 하지만 여기엔 바다가 없습니다. Sun fish는 상상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다는 어떤 곳일까?’ 달토끼는 지구에서 온 토끼입니다. 간을 노리는 거북이한테서 도망쳐 달로 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다에 대해 잘 압니다. 달토끼는 Sun fish에게 파란 바다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해주곤 했습니다. 달토끼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Sun fish야, 네 몸에 난 버섯이 널 죽음에 이르게 할 거야. 죽기 전에 네가 바다를 꼭 보길 바래.” 어느 날 Sun fish는 바다를 보기 위해 먼 길을 떠났습니다. 결국에는 바다에 다다랐지요. 모두에게 푸른색으로 보이는 바다가 어쩐 일인지 Sun fish에게는 검은 색으로 보였습니다. Sun fish는 시원하게 부는 바람, 검은 모래사장, 검게 출렁이는 물결, 계속 밀려와 부서지는 파도에 매혹되었습니다. 그렇게 Sun fish는 검은 바다를 만났습니다.

왕후의 시선

이 나라의 왕후는 어떤 느낌으로 이곳을 바라보았을까? 분명 지금 시대의 사람들이 바라보는 풍경의 느낌과는 달랐을 것입니다. 나에게 다가온 왕후의 느낌은 사치스러움에 화려함이나 부유하기에 여유로움보다는 이 궁에 갇혀 유일하게 바라볼 수 밖에 없었던 많은 문과 통로로 이루어진 쓸쓸함 이였습니다. 그녀들이 바라보는 관점으로 실내에서 바라본 창과 문을 통해 보는 밖, 외부에서 바라보는 그녀들의 궁들.. 그녀들은 누구나 가질 수 없는 것을 누리며 살았지만, 넓은 궁의 일부만을 사용하며, 왕의 통제 속에 있었습니다. 그녀들의 단절된 시선이 궁 안 곳곳이 묻어있고, 그녀들의 시선을 따라 궁은 조각조각 나눠져 나의 사진에 쓸쓸하게 담깁니다. 적외선 촬영의 기법은 빛의 많은 양중에 극히 일부분만 담아내는 표현하는 기법입니다. 모든 빛을 받아들이지 않고 필터를 통해 걸려진 빛으로 아름다운 세상이 되도록 담아내는 나의 시선과 그녀들의 시선이 닮아 있지는 않은지 생각합니다. 나의 작업의 마무리는 찬란한 파란색과 핑크, 혹은 금빛에 가까운 갈색과 회색의 조화로운 조합입니다. 작업을 마주했을 때는, 그 색상과 형상의 화려함과 찬란함에 감탄하지만, 사실은 몇 가지 빛의 색으로만 이루어진 단조롭고 차가운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왕후들의 삶이 아름답고 화려한 삶과 같이 보이지만, 그녀들의 시선은 엄격한 규율과 단조로운 삶으로 차갑게 얼어버린, 어쩌면 아슬아슬하고 위험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 합니다. 궁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왕후들의 시선과 함께, 찬란하고 아름답지만 차갑고 쓸쓸한 궁을 드러내며, 아름다움과 차가움의 중간쯤을 살고있는 많은 이에게 어떠한 의미로 비질지 의문을 던집니다.

The small store

그 많던 작은 가게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의 유년시절은 곳곳에 옛날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애매하게 현대화된 재래시장에서 흘러갔다. 우리 어머니는 옷 가게를, 죽마고우의 어머니는 미용실을, 학교 친구들은 각각 우유 유통, 의상실, 서예학원의 아들, 딸들이었다. 각자의 집에서는 고유한 냄새가 났다. 그 냄새는 시장 안에 자리한 그 작은 가게들 고유의 향이었을 것이다. 요즘, 특히나 도시에서는 자기만의 냄새를 가진 가게들을 찾기란 힘들다. 작은 가게들은 이제 시장이 아니라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속으로 들어갔고, 반듯하고 깨끗한 그곳에서 더는 고유한 냄새를 풍기지 못한다. 그런 사라져버린 작은 가게를 길에서 만날 때마다, 나의 눈과 카메라에 담게 되었다. 늦은 밤 고독하게 불이 켜진 작은 가게들은 그들만의 개성이 여전히 살아있었다. 그 화려한 듯, 화려하지 않은 불빛은 어쩌면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지키며 삶을 이어가는 등불처럼 보였다. 나는 그 불빛이 세상을 지키는 아름다움이라 느낀다.

A sign of rian

한국을 대표하는 타악기인 장고가 반주 악기의 틀에서 벗어나 다양한 장르의 예술과 접목, 보다 넓은 범위로 확장 사용됨으로써 독립된 형태의 공연물을 만들어 내기위한 방향을 제시하는 데 연주자의 의도가 담겨져 있다. - 김소라의 작업내용 중.